골프/90타 깨기

골프, 슬라이스와 훅 구질의 기로에 서서

빈스 윙 2012. 4. 27. 07:30

대부분의 초보골퍼들은 처음 골프를 배우면서 슬라이스에 시달리곤 한다. 꼭 슬라이스는 아니더라도 오른손잡이 골퍼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가는 공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다.

 

그런 상황에서 레슨프로들이나 구력이 조금 된 친구들은 다운스윙에서 임팩트로 향하는 클럽헤드가 4시 방향으로 들어와서 10시 방향으로 빠져 나가도록 스윙을 하라고 말하곤 한다. , -아웃 궤도로 스윙 하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인골퍼들은 그렇게 하라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한, 시키는 대로 스윙을 하기 힘들다. 특히 성인 남성 골퍼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가끔씩은 공이 똑바로 나가기도 하면서 골프의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연습을 하면서 드라이버 티샷으로 오비를 내는 일도 점점 줄어든다. 이 때쯤 되면 공이 휘어지더라도 초보 때만큼 많이 휘어지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서 훅이 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슬라이스는 첫사랑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첫 사랑은 깨져야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어느 정도 골프 실력이 향상되면 첫사랑 슬라이스는 사라지고 잠시 스트레이트성 구질이 자리를 잡는가 싶다가 훅이라는 놈이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골퍼들은 슬라이스를 자신의 구질로 즐겨 사용하는 골퍼들도 있다. 슬라이스가 사라지지 않아서 체념하고 슬라이스를 자신의 구질로 받아들인 것인지 아니면 슬라이스라는 구질 자체를 좋아해서 의도적으로 즐겨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구질에 순응해서 아주 즐겁게 골프를 치는 골퍼도 있다.

 

나의 경우는 슬라이스 대마왕으로 드라이버를 쳤다 하면 슬라이스가 나서 공을 20개씩 준비해도 불안했던 시기도 있었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슬라이스로 구겨진 나의 마음을 빨랫줄처럼 쫙쫙 펴주는 스트레이트성 구질로 기분 좋은 라운드를 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목표방향을 기준으로 할 때 왼쪽으로 날아가는 훅성 구질이 많은데, 슬라이스를 많이 내는 골퍼들은 나의 구질을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도 나름대로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내가 슬라이스를 냈던 주요 원인은 아웃-인 궤도로 엎어 치는 스윙을 했기 때문이다게다가 상체가 먼저 앞으로 나가는 괴상한(?) 스윙을 하다 보니 클럽헤드가 미쳐 따라 내려오지 못해서 클럽페이스가 열려 맞으니 슬라이스는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머리를 공 뒤에 두는 것과 헤드업의 관계 - http://blog.daum.net/beanswing/377' 에서도 언급했듯이 머리를 공 뒤에 둔다는 것에 대해 깨달으면서 상체가 먼저 나가는 부분이 많이 개선되었고, 오른쪽 팔꿈치를 몸에 붙여서 다운스윙을 하는 노력 끝에 슬라이스라는 만성질환이 서서히 고쳐져 갔다. 지금은 한 라운드에 한 번 정도 슬라이스가 나올까 말까 한 정도로 거의 완치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에 이르렀다.

 

공이 약간 오른쪽을 향해서 출발하더라도 슬라이스성 사이드 스핀이 걸리지 않아서 오른쪽으로 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공이 왼쪽으로 휘어 들어오는 드로우 구질을 가끔씩 볼 수 있으니 슬라이스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슬라이스의 악몽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오른쪽으로 에임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차라리 왼쪽으로 에임을 하고 슬라이스가 나는 것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훅이 나지 않았을 때는 샷을 하면서 슬라이스와 스트레이트 구질 두 가지 경우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공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 에임을 할 수도 없고, 그로 인해 페어웨이 안착율은 슬라이스가 나던 시절(왕슬라이스가 나던 시절이 아님)보다 더 떨어졌다.

 

슬라이스가 나던 시절에는 공이 날아가는 방향이 스트레이트 아니면 약한 슬라이스였기 때문에 페어웨이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에임을 하고 스트레이트로 날아가면 공이 페어웨이 왼쪽이나 러프지역에 떨어지고, 약간 슬라이스가 나면 페어웨이 중앙이나 슬라이스가 심하면 페어웨이 오른쪽에 떨어지니 부담 없는 티샷을 날릴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피니쉬도 끝까지 하는 자신 있는 스윙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있지도 않은 경우의 수를 하나 더 계산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스윙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생각해야 할 경우의 수는 스트레이트성 구질과 훅 구질 두 가지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래도 슬라이스가 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에임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하고, 스윙도 자신감이 떨어져서 피니쉬를 끝까지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스윙이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걱정의 80%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을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내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슬라이스가 날 확률은 5%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5%를 포기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내 모습이 인간의 나약함과 우매함을 동시 상영하는 것 같다.

 

슬라이스가 나는 초보골퍼에게 왼쪽으로 에임을 하고 평소 스윙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하면, 많은 초보골퍼들이 그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왼쪽으로 에임을 했다가 슬라이스가 나지 않고 지금까지 한번도 날려본 적이 없는 스트레이트 구질이나 훅이 날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정말 재미있는 조사결과인데, 이러한 초보골퍼의 마음에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공의 궤적을 스윙으로 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런데 연습장에서도 오른쪽으로 휘어지던 공이 필드에서 초보골퍼의 의지에 의해서 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많은 초보골퍼들이 자신에게만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지 라운드를 하면서 스윙으로 슬라이스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나 역시 이런 초보골퍼들의 마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훅이 나는 것을 알면서도 오른쪽으로 에임을 못하는 것은 내가 나의 의지로 공을 바로 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믿음과 관계된 부분이다. 골퍼 스스로가 자신의 스윙과 샷을 믿지 못하면 자신 있는 스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제어하지 못하면 자신의 스윙도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죽하면 내가 이루다 드래곤 드라이버 사용후기의 제목을 '나도 나의 골프스윙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 http://blog.daum.net/beanswing/721' 라고 정했을까.

 

며칠 전에 이루다 드라이버 시타 라운드를 나가서도 슬라이스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슬라이스가 날 것을 두려워해서 오른쪽으로 에임을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이렇게 내가 내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내가 나의 스윙을 믿지 못하면 자신 있는 스윙도 할 수 없고 뭔가 부자연스러운 동작이 연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골프를 잘 치려면 골프스윙의 기술적인 부분도 능숙하게 익혀야겠지만,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컨트롤하고 극복할 수 있는 제어력도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만약에 내가 나의 스윙을 믿고 약간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고 자신 있게 스윙을 한다면 아마도 오비같은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자신 없는 스윙이 오비를 만드는 악순환이 지금도 나를 비롯한 수 많은 초보골퍼들에게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를 비롯한 모든 초보골퍼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구질을 수용하면서 골프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글을 맺는다. 골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겁나게 어려운 운동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