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비거리,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10살 짜리 아들에게 배운 스윙의 본질 - http://blog.daum.net/beanswing/188" 에서 언급했듯이, 요즘은 아들과 함께 연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들의 스윙을 보면서 참으로 여러 가지를 확인하게 되고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나의 비거리가 아닌, 아들의 비거리에 대해 상당한 욕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 해 12월 20일부터 1주일 간은 빈스윙 연습만 하다가 아들이 지루해 하는 것 같아서 27일에는 스크린 연습장에서 거리를 측정해 보았다. 드라이버(쥬니어용) 거리가 최고 130미터, 평균 120미터 정도 나간다. 이 정도 거리로는 라운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 평균 비거리 150미터 이상 나가면 올 봄에 같이 라운드를 하기로 하고, 아들의 비거리 늘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2월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비거리 측정을 하기로 하고, 먼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프로의 도움을 받아 힙턴을 가르쳤다. 허리가 돌아가는 템포와 스윙을 하는 템포가 엇박자가 나면서 스스로도 어색해 하더니 이내 힙턴을 하면서도 전체적인 스윙템포를 익혀간다. 이제는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스윙궤도를 올바르게 그리는지 그립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 공의 위치는 제대로 되었는지, 공과의 거리는 적당한지 정도의 기본적인 것 뿐이다.
연말이라 내가 저녁 시간에 약속이 많았던 관계로, 아들 혼자서 연습하는 날이 많았는데, 하루는 엄마가 같이 가서 코치를 한다고 이래라 저래라 한 모양이다. 이에 아들 왈 "나 혼자 생각 좀 하게 그냥 가만히 계세요."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스윙을 하는 줄 알았는데,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생각을 하나 보다.
다음 날, 내가 아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코치를 하자, 엄마 왈 "애가 생각 좀 하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이에 아들 왈 "아빠는 얘기해도 괜찮아요."
아마 엄마가 좀 서운했을 것 같다. 엄마도 라운드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스윙실력으로만 따지면 나 보다 훨씬 좋은 스윙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며칠 간 연습을 하고 드디어 힙턴의 위력을 확인하는 날이 되었다. 나와 옆에서 지켜보던 성인 골퍼 그리고 힙턴을 가르쳤던 프로, 모두 놀랄 수 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드라이버 거리가 150미터로 늘어난 것이다. 최대 비거리는 160미터. 방향은 자로 줄을 그은 듯 정확하게 앞으로만 간다.
그런데 아들이 쥬니어용 드라이버로는 아무리 쳐도 150미터 정도 밖에 안 나간다며, 거의 자기 키만한 내 드라이버를 잡고 몇 번 연습스윙을 해 본다. 스윙궤도가 플랫해지고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리고 아주 가볍게 휘둘러 버린다. 역시 스윙에 흐트러짐이 없다. 스크린에 비거리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해서 멈춘 지점은 167미터. 그제서야 만족했는지 환호성을 지르며 내 드라이버를 탐낸다. 잘못하면 내 드라이버를 아들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아들은 만족했는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내가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개학 하기 전에 같이 라운드를 한 번 하기로 하고, 올 봄에는 170미터 정도의 평균 비거리를 목표로 연습시킬 계획이다. 아직은 스윙 스피드가 많이 느려서 비거리를 늘일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가 아들을 가르쳐 보겠다고 탐을 낸다.
라운드 연습 겸 스크린도 같이 한 번 쳤다. 파3홀은 아들이 모두 치고, 나머지 홀은 나와 번갈아 가며, 치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95타가 나왔다. 나 혼자 쳐도 스크린 스코어가 90대 초반이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좋은 스코어가 나온 것이다. 물론 멀리건을 2개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아들의 비거리를 기록하려는 마음을 먹은 이유는 아들에게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처 주기 위함인데, 이렇게 빨리 비거리가 향상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나의 욕심으로 인해 아들의 스윙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심 해야겠다. 아들이 스윙을 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은근히 아니 간절히 뻥뻥 날려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