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자신의 구질을 인정하자

빈스 윙 2010. 10. 8. 14:00

지난 8월에 담양다이너스티에서 54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의 드라이버 티샷은 오비없이 200미터 이상 보낸 오잘공이 4개가 나왔고 페어웨이 안착율도 60%를 상회하였고 피니쉬도 5초 이상 유지하는 등 만족스러운 샷을 하였다. 구질도 스트레이트성으로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두 번째 라운드부터 구질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해서 점점 훅이 났는데 페어웨이 안착율은 50% 이하로 떨어졌고, 오비도 4개나 나왔다. 전 날과 달라진 것은 피니쉬를 끝까지 못했다는 점 외에는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후로 4번의 라운드를 했는데 드라이버 샷은 계속 훅이 났고, 난 휘어진 구질을 똑바로 펴보겠다고 페어웨이 중앙을 향해 샷을 해댔다. 계속 훅이 나자 캐디와 동반자들이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라고 조언을 했건만 난 고집스럽게 중앙으로 에임을 했고 휘어진 샷이 펴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지 못한 것은 불과 3개월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슬라이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오른쪽으로 에임을 했다가 슬라이스가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때문에 왼쪽으로 휘어서 계속 오비가 나는 상황에서도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나의 구질을 스트레이트로 만들고 싶었고 예전의 슬라이스나 지금의 훅을 나의 구질이라고 인정하기가 싫었다. 이번 주에 나갔던 라운드에서도 1번홀부터 훅이 났고 2번홀 역시 훅으로 오비가 나면서 조짐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 날 81개를 친 구력 10년 이상 되는 친구가 슬라이스가 무서워서 오른쪽으로 에임을 못한다면 티박스 왼쪽에 서서 슬라이스가 나도 오비가 나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만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했다.

 

나는 그 동안의 고집을 접고 그 친구 말대로 약간 오른쪽으로 에임을 하면서 "끝(피니쉬)까지 스윙을 가져가고, 난 절대 슬라이스가 나지 않는다" 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결국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슬라이스는 하나도 나지 않았고 훅이 났지만 후반에는 7번의 드라이브 샷 중에서 6번을 페어웨이에 떨어뜨릴 수 있었다. 정말 기분좋은 마무리였다.

 

지금 난 또 고민한다. 정말로 훅을 나의 구질로 인정하고 계속 그렇게 라운드를 해야 하는지...

그러면서 지난 8월 담양에서 81개를 친 후배의 스윙과 구질이 생각났다. 3라운드 동안 꾸준하게 80대 초반의 스코어를 유지한 그 후배는 스윙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 구질은 내가 보기에 거의 악성 슬라이스에 가까웠다. 하지만 오비를 하나도 내지 않고 공을 왼쪽에 있는 홀로 보냈다가 페어웨이 중앙으로 착지시키는데 거의 묘기에 가까운 아니 신기에 가까운 샷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 후배와 처음 라운드를 한 나는 1번홀 첫 티샷이 완전히 왼쪽 오비지역으로 가는 것을 보고 오비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비지역으로 넘어갔던 공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페어웨이로 날아들어 오는데 경탄을 금치 못했다. 54홀 내내 일정하게 휘어지는 (자신은 페이드 샷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악성 슬라이스가 맞다) 구질로 라운드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 나도 훅을 나의 구질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