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 잘 가르치는 것과 잘 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빈스 윙 2011. 1. 4. 08:30

골프는 하루만 먼저 배워도 나중에 배운 사람을 가르치고 싶게 하는 운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 겠지만 골프는 처음에 잘 배워야 하는 운동이라고도 한다. 여기까지는 크게 반론을 제기하는 골퍼들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 처음에 잘 배워야 하는 운동인데, 그 처음이라는 시간적인 개념이 모두 같을까? 절대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어린 학생시절부터 배운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인생은 60부터' 라며 환갑을 지난 나이에 배우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골프연습장에서 골프를 지도하는 대부분의 레슨프로들은 어려서부터 골프를 시작한 경우가 많다. 나도 지금 어린 아들과 함께 골프를 하고 있지만, 유소년이 체득하는 골프의 스윙과 성인이 받아들이는 스윙은 180도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유소년들은 골프스윙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최경주 선수가 얘기한 본능적인 스윙을 하는 것이다. 반면, 성인 초보골퍼들은 머리 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스윙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레슨프로들 자신이 어려서 배웠던 것을 기억해 가며, 성인 초보골퍼들에게 가르친다면, 성인 초보골퍼들이 제대로 못 따라 하니, 가르치는 사람도 답답하고 배우는 사람은 더욱 답답해지게 되어, 심지어는 골프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배우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레슨이 필요한데, 그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경험하고, 그런 상황을 겪어 본 경우에는 쉽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경험치와 상대방의 상황을 겪어 보지 못한 경우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을 가르치는 방면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있다. 반면 공부는 아주 잘해서 전교에서 1,2등을 다투지만 동생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미숙한 사람도 있다. 골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는 싱글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남을 가르치는데는 잼병인 친구가 있는가 하면, 보기플에이어 수준의 실력을 가졌지만, 정말 알기 쉽게 자신의 경험담을 곁들여 설명해 주는 친구도 있다.

 

한국 선수들이 미국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바람에 유소년 골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한국의 부모들은 지도자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지도자의 인성이나 교육철학 그리고 남을 가르치는 재주를 평가하기 보다는 지도자의 학력이나 우승경력을 따지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부 부모만의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학벌주의의 일부분에 불과한 현상일 수도 있다.

 

 

다음은 2009년 골프다이제스트에서 선정한 미국 최고의 티칭프로를 표로 작성한 내용이다. 2010년 티칭프로 랭킹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순 위
                 이           름             대   표         제   자
      1  부치 하먼(Butch Harmon)  필 미켈슨, 어니 엘스, 아담 스콧
      2  행크 해이니(Hank Haney)  타이거 우즈, 마크 오메라
      3  데이비드 리드베터(David Leadbetter)  미셸 위, 닉 프라이스, 이안 폴터
      4  짐 맥클린(Jim McLean)  브래드 팩슨, 앤서니 킴, 크리스티 커 
      5  척 쿡(Chuck Cook)  탐 카이트
      6  스탠 어틀리(Stan Utley)  재이 하스, 대런 클락, 리 웨스트우드
      7  짐 하디(Jim Hardy)  
      8  짐 플릭(Jim Flick)  잭 니클러스, 탐 레먼, 김인경
      9  마이크 벤더(Mike Bender)  잭 존슨, 리 잰슨, 이선화
     10  마틴 홀(Martin Hall)
 

 

과연 미국 최고의 티칭프로로 선정된 10명의 지도자들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 보다 실력이 뛰어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절대 아니다. 10명의 지도자 가운데 PGA 투어나 유러피언 투어에서 선수생활을 한 사람은 부치 하먼, 데이비드 리드베터, 스탠 어틀리, 짐 하디 4명 뿐이다.

 

세계적인 골프지도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행크 해이니의 경우는 투어프로의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골프 지도자로는 유일하게 명예의 전당에 오른, 그리고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스승인 하비 페닉은 그저 보기플레이어 수준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설마? 나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아마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스코어가 아닐까?)

 

결국 제자보다 혹은 제자만큼의 실력을 갖춘 지도자가 없는 셈이다. 이는 제자보다 잘 치기 때문에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계적인 지도자들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골프 지도자로 사후에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하비 페닉의 경우를 보자. 초창기 데이비드 리드베터를 가르치기도 했던 하비는 골프계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우는 지도자다.

 

1995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쓴 첫 골프서적인 <Little Red Book>을 보면 평생을 골프와 함께 살아온 골프지도자의 인생과 골프철학이 담겨있다. 단순하게 골프의 문제점과 기술적인 요소를 담은 것이 아니라, 골프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느낄 수 있다.

 

"그립과 스탠스가 좋지 않다면 스윙에 관하여 무엇을 배우더라도 의미가 없다."

"고수는 1타를 버림으로 위기를 극복하지만, 하수는 1타를 아끼려다 위기를 자초한다."

"골프는 명예의 게임이다. 혹시 명예롭지 못한 경기를 했다면 골프에서 완전한 만족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하비 페닉의 명언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골프에서의 진리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골프에서 골퍼로서의 자질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됨됨이와 인성을 강조하는 지도자, 그리고 열정과 사랑으로 레슨하는 지도자, 골퍼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는 지도자. 무조건 '하지마라'가 아닌 잘못된 스윙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집어 주는 이런 지도자를 최고의 지도자로 꼽고 싶다. 단순히 스윙의 기술을 알려주는 지도자가 아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지도자가 어린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비 페닉은 유소년 골퍼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하지마라', '그렇게 하면 안돼' 등의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부분까지 생각해 가면서 골퍼들을 지도하는 지도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골프를 쉽게 가르치고, 골퍼들을 배려하고, 가르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지도자는 따로 있는가 보다. 그러한 지도자가 꼭 골프를 잘 쳐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