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가족 이야기

나의 작은 변화에 크게 변화하는 아이들

빈스 윙 2011. 6. 12. 15:20

어제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사직구장을 찾았다. 롯데와 한화와의 경기를 관람하고 볼링치고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넘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집을 나섰으니 거의 12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 있었던 셈이다. 물론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중간 중간에 친구와 놀았던 시간을 제외하면 가족이 같이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족끼리의 대화가 너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통 관심사도 없고, 자녀의 관심사를 모르니 얘기 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나도 참 문제다.

 

가족 모두가 녹초가 되어 오늘은 늦잠을 잤다. 9시가 되니 어김없이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새벽같이 일어나 교회에 간 아내가 아들들 챙겨서 교회에 가라고 깨우는 전화다. 아침을 항상 챙겨 먹는 작은 아들은 밥통에 딱 한 그릇 남은 밥을 혼자서 챙겨먹고, 먹는 것에 취미가 없는 큰 아들과 나는 그냥 굶고 교회로 향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은 아들이 자전거와 씨름을 하고 있다. 자전거 뒷바퀴가 펑크 난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이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보인다. 자기 용돈을 모아 거금 14만원이나 주고 산 자전거가 구입한지 반 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속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나중에 엄마한테 얘기해서 고치라고 했을 텐데, 좋은 아빠 되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먼저 아들의 속상한 마음을 헤아리고,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당장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고치고 싶어요."

"좋다. 가자. 그런데 수리비용은 네가 내야 한다."

 

"수리비용이 얼마나 나올까요?"

" 3천원에서 5천원 정도는 나올 것 같은데.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도 5천원 이면 되니까."

아들이 돈이 아까웠던지 조금 망설이는 눈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얘기했다.

"그럼 자전거를 산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자전거 산 곳에 가서 얘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냥 공짜로 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자전거를 차에 싣고 자전거를 구입한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휴일이어서인지 문이 닫혀 있다. 아들의 급 실망한 표정이 안쓰럽다.

"그럼 자전거 수리점에 가 볼까?" 라는 내 한 마디에 표정이 밝아진다.

"가서 자전거는 차에서 내리지 말고, 수리하는데 얼마인지 먼저 물어보고 너무 비싸면 다음에 자전거 산 곳에 가서 얘기해 볼래요."

 

자전거 수리점에 도착해서 수리비용을 물어보니 역시 5천원이란다. 자동차 타이어는 그냥 바깥에서 때우면 되지만, 자전거는 안에 있는 튜브를 꺼내서 때우고 다시 휠에 끼워 넣어야 하니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일이 많다는 것이다다음에 그냥 자전거 산 곳에 가서 얘기해 보겠다고 얘기하는 아들의 표정에서 처음에 난감해 하고 실망하던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드신 노인 양반이 자전거 수리로 생활하는데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아들을 인도한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판단은 아들에게 맡기더라도 아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집에 와 보니 밥도 없고 해서 아들들과 함께 외식을 할까 생각했는데, 역시 큰 아들이 제동을 건다. 큰 아들은 공부한다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한다. 그래서 항상 밥은 집에서 먹기를 원한다. 예전 같으면 밥도 안 해 놓고 다닌다고 화를 냈을 텐데, 좋은 남편 프로젝트를 선언한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그럴 수는 없다. '아마도 요즘 아내가 많이 피곤해 하던데, 정말 많이 힘들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내도 도울 겸 집안 일도 하는데 까지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제 너무 피곤했던지 씽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가득하다. 일단은 밥부터 하려고 쌀통을 보니 쌀이 없다. 그리고 쌀통 옆에 20KG 짜리 쌀 포대가 있었다. 쌀 포대 안에는 쌀을 푸는 컵이 하나 있었다. 왠지 나의 무심함에 화도 나고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20KG 쌀 포대를 들어서 쌀통에 붓지 못해 그렇게 쌀통 옆에 세워두고 밥을 할 때마다 조금씩 퍼서 없어진 쌀이 이미 1/3가량 되었다. 먼저 쌀을 씻어 밥부터 올려 놓고, 쌀 포대에 남아있는 쌀들을 쌀통에 옮기는 내 마음이 왠지 무거워졌다.

 

설거지를 하고 나서, 빨래를 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할 지 그리고 물은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자동세탁기를 수동으로 물 넣고, 손으로 빨래를 휘저어가며 세제를 간신히 맞춰 넣고 다시 자동세탁으로 돌렸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세탁물을 빼면서 보니 세탁기에 다 써져 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 분리하고 나니 밥이 다 되었다.

 

밥을 준비하면서 내가 손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아들에게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도와 큰 아들은 숟가락, 젓가락을 준비하고, 작은 아들은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준비한다. 평소에는 엄마가 도와 달라고 얘기를 해도 안 하던 아들들이 자발적으로 식사준비를 거드는 것을 보고 희망을 발견했다. 두 아들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큰 아들에게 자전거 타이거 펑크 난 일에 대해 얘기했다. 큰 아들의 A/S 차원에서 분명히 공짜로 해 줄 거라는 말에 작은 아들이 안심하는 눈치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 큰 아들은 공부하러 방에 들어 가고, 작은 아들은 이불개고, 일기 쓰고, 책 읽고, 수학문제 풀고, 자기 할 일을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한다. 항상 잠들기 전에야 밀린 숙제며 준비물을 챙겨서 엄마를 힘들게 했던 작은 아들도 내가 집안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컴퓨터 게임과 TV(만화) 보는 것을 하기가 미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빨래를 너는 사이에 컴퓨터에 앉아 있길래 게임을 하는 줄 알았는데, 독템(독서교육 지원시스템) EBS 강의를 먼저 듣는다. 정말 웃기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평소에 나는 주중이면 회사 일로 피곤한 나에게 집안 일을 시키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주말이면 골프 연습장으로 향하거나 필드로 향했고, 대부분 나의 개인적인 일을 우선 순위로 삼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평소에는 정말 하기 싫어하던 집안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는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내친 김에 베란다 청소와 창고정리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서 글을 맺는다. 어제도 얘기했듯이 아버지가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다. 오늘 난 집안 일로 몸은 조금 피곤하더라도 마음만은 푸른 창공을 날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