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장 코스에 농락 당하는 골퍼들

빈스 윙 2011. 1. 13. 08:30

도대체 골프를 치라고 골프장을 만들었는지, 골퍼들 골탕 먹이려고 골프장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라운드 할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했고, 지금은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 만큼 예전보다는 골탕을 덜 먹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골프장 코스에 정복 당하고 마는 실정이다. '정복 당한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내가 골프장 코스와 어우러지지 못하고 정복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혹시 지금까지도 코스 정복의 야망을 가지신 골퍼가 계시다면 빨리 포기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골프장의 코스는 정복의 대상도 아니고, 정복 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드라이버 비거리가 얼마 나가지 않았을 때는 걱정하지도 걱정 할 필요도 없었던 것들이 이제는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00미터를 넘어 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페어웨이 벙커에 자주 빠지게 된다. 물론 나의 코스 매니지먼트에 문제가 있다. 벙커까지는 못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벙커방향으로 쳐서 벙커에 빠지는 일이 많았으니까.

 

코스길이가 짧다고 만만하게 봤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코스길이는 짧지만 티 박스에 서면 공을 어디로 쳐야 할 지 막막하거나, 그린이 2단, 3단 그린으로 조성되었고, 핀 위치는 그린 구석이나 벙커 바로 뒤에 있어 골퍼들을 난감하게 하는 일이 많다.

 

한 번은 티샷부터 벙커에 빠지기 시작해서 모든 샷이 벙커로 들어가 벙커샷으로만 5번 만에 그린에 올린 적이 있다. 나의 이런 모습을 코스 디자이너가 보았다면 매우 흐뭇해 했을 것 같다. 물론 나의 느낌은 코스 디자이너에게 철저하게 농락 당했다는 것이지만.

 

이것 뿐 만이 아니다. 같이 라운드를 하다보면 헤저드에 반드시 공 한 개씩 공양을 드리고 지나가는 골퍼들도 있는가 하면, 도그렉 홀의 거리를 애매하게 만들어 거리가 좀 나는 골퍼에게 직접 공략하도록 유혹하는 홀도 있다.

 

단순히 코스길이로 골프장의 난이도를 평가하는 골퍼들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골프장의 난이도는 코스길이 외에도 얼마든지 어렵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숨어있다. 처음에 설계를 하면서 부터 어렵게 설계를 할 수도 있고, 단순히 핀의 위치를 조정함으로써 그린을 공략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그 동안 여러 골프장을 다니면서 골프장을 설계한 사람의 의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티박스에서 홀에 도달할 수 있는 여러가지 경로가 있다. 그 중에는 쉬운 길로 가는 골퍼와 어려운 길로 가는 골퍼들이 있을 것이다. 쉬운 길은 대부분 먼 길로 돌아가야 하는 길이 대부분이다. 어려운 길은 거리는 가깝지만 여러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거리가 긴 경로를 택했을 경우에는 설사 미스샷을 했다 하더라도 심각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적게 설계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골퍼들에게는 가능하면 가까운 길로 가려는 본능이 있어서 이처럼 긴 거리의 경로를 택하는 골퍼는 많지 않다. 어쩌면 골프설계가들이 이러한 골퍼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해서 설계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그린에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코스 오른쪽을 공략하는 것이라면 코스 오른쪽에 헤저드를 만들어 위험부담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저드 방향으로 과감하게 공략하여 성공한 사람에게는 조금 더 쉽게 그린을 공략할 수 있는 배려(?)도 해 놓았다.

 

골프코스를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서로 다른 실력을 가진 골퍼가 플레이를 하지만, 초보골퍼들에게는 벌타를 받지 않도록 조성되어 있는 홀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페어웨이 벙커는 어느 정도 골프를 친 골퍼의 거리에 맞춰 조성해 놓은 듯 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박스 앞의 헤저드도 150미터를 넘겨야 하는 골프장은 별로 보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똑바로만 샷을 날릴 수 있으면 초보골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골퍼들이 벙커에 자주 빠지고, 헤저드에서는 물맛(?)을 한 번씩 보고 지나가는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과 함께 최소한의 코스매니지먼트 조차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많은 초보골퍼들은 골프라는 거대한 산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저 하나의 샷을 하는데 급급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골프장 입장에서는 초보골퍼들에게 골프의 흥미를 선사해 주기 위한 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어렵게 만들면 초보골퍼들이 다시는 찾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초보골퍼들은 이런 골프장의 영업적인 배려(?)를 알지 못한다. 그냥 막연하게 샷만 하다가 '벙커가 많네', '헤저드가 어쩌구~~' 하면서 코스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라운드를 하면서 코스설계자의 의도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골프코스를 정복한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코스외에도 자연과 환경도 정복한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코스설계자의 마음을 읽어 가면서 한홀 한홀 그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골프에서의 재미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것이니 만큼 이렇게 라운드를 하면서 코스설계자의 마음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의 한 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