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좌충우돌 왕초보 빈스윙의 머리 올리기

빈스 윙 2011. 3. 18. 09:00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겨우내 골프에 입문했던 초보골퍼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푸른 잔디 위로 멋지게 날아가는 하얀 공을 상상하며 생애 첫 라운드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아직은 공도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스윙궤도도 들쑥날쑥 이고, 드라이버샷은 슬라이스가 나기 일쑤지만, 그래도 친구가 머리를 올려주겠다며 라운드를 부추긴다. 라운드 날짜가 잡히고, 망신 당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연습을 하기는 하는데, 골프라는 운동이 단시간에 실력을 쌓는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둥, 클럽에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둥. 푸념 같은 핑계를 늘어놓는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라운드 당일이 되었다. (?)을 꾸리는데 웬 시간이 그렇게 걸리는지. 혹시 빠진 것은 없나 몇 번이고 생각을 해보지만 머리만 복잡해진다. 늦지 않게 오라는 친구의 말에 잠을 설쳐가며 이른 새벽부터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새벽 공기를 가르며 골프장으로 향한다.

 

락커키를 받아 들고 옷을 갈아입고 클럽하우스를 빠져 나온다. 연습그린이 눈 앞에 보이고, 생각보다 훨씬 넓은 페어웨이도 보인다. 연습그린에서 연습을 하고 싶은데 내 클럽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눈치 빠른 초보골퍼는 자기 클럽을 찾아서 연습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숫기가 없는 초보골퍼는 어디에 묻지도 못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번홀 티 박스에 모였다. 준비운동을 시키는데, 온 몸이 굳어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내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그래도 티샷을 하게 된다. 일행들이 먼저 샷을 하는데 기가 막히게 앞으로 잘도 날아간다. 드디어 내 차례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힘차게 후려쳤는데 완전히 바나나 킥이다. 오른쪽 홀로 넘어갔다. 캐디가 그냥 오비티에 가서 치란다. 캐디가 야속하다. 한 번만 더 치게 해 주면 좋을걸. 한 번 더 치면 오비가 나지 않을 것 같은 것이 왕초보 빈스윙의 마음이다.

 

오비티에서 두 번째 샷을 했는데 그게 네 번째 샷이란다. 난 두 번 밖에 치지 않았는데 왜 그게 네 번째 샷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정말 갑갑해 죽겠다. ‘내가 초보라고 나를 놀리려고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다 치고 톱볼에 뒤땅에 제대로 맞은 샷이 하나도 없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린 근처까지 왔다.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10~20 미터 정도 남은 거리야 어떻게든 쉽게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었다는 것을 라운드를 마치고서야 알게 된다.

 

첫 번째 홀을 어떻게 마쳤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두 번째 홀 티샷. 공을 올려놓으려고 티를 찾으니 티가 없다. 당황스럽다. 아마도 1번 홀에서 정신줄을 놓으면서 그냥 왔나 보다. 마음씨 놓은 캐디가 티를 하나 건네준다. 근데 얼굴표정이 좀 이상하다. 이번만큼은 슬라이스가 나더라도 오비는 내지 말자는 생각에 왼쪽 방향으로 에임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어드레스를 하고 나니 슬라이스가 안 나서 공이 왼쪽으로 그대로 날아갈까 봐 걱정이 된다. 참 걱정도 팔자다. 언제 스트레이트로 드라이버 샷을 날려보기는 했나? 두 번째 샷도 역시 바나나 킥이다. 그래도 오른쪽 언덕에 공이 있을 거라는 캐디의 말이 너무 고맙다.

 

공을 찾아 세컨 샷을 하려고 어드레스를 잡고 보니, 공의 높이가 거의 가슴높이까지 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캐디가 200미터 정도 남았다며, 8번과 9번 아이언을 건네준다. 그래도 거리가 많이 남았으니 5번 아이언을 들고 설친다. 폼 제대로 잡고 휙 휘둘렀으나 뒤땅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샷도 모두 뒤땅이다. 정말로 내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캐디가 왜 8번과 9번 아이언을 줬는지 생각조차 못한다.

 

대 여섯 번 만에 그린에 올라왔다. 20여 미터 퍼팅을 남겨 두었는데, 도대체 감이 안 온다. 어느 정도 세기로 쳐야 할지 모르겠다. 동반자 중 한 사람이 무조건 세게 쳐 보라는 말에 세게 쳐보지만 절반 남짓 가다가 멈춰 선다. 도대체 얼마나 세게 쳐야 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퍼팅. 이번에는 너무 세게 쳤다.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게 퍼팅이다. 공이 홀컵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아직 몇 미터나 남아있는데 그냥 다음 홀로 가자고 한다. 양파라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제 3번 홀이다.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언제 18번 홀까지 돌지 정말 돌아 버리겠다. 근데 다행히도 파3홀이다. 100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도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동반자들이 PW 혹은 9번 아이언을 잡는다. 7번 정도는 잡아야 할 형편인데, 갑자기 내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자존심 때문에 한 클럽 짧게 잡는다. 왕초보 빈스윙은 자존심이 골프를 대신 쳐 주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역시나 짧아도 한참 짧다. 한 클럽 짧게 잡았으니, 힘을 들어갔고, 그게 바로 뒤땅으로 이어져 마의 30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30미터 어프러치를 홀컵 2미터 지점까지 보낸다. 그리고 투 퍼트로 홀 아웃 한다. 이 때부터 빈스윙은 자기가 어프러치를 아주 잘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조금 기분이 좋아진 빈스윙이 4번 홀로 이동한다. ? 480미터 파5 홀이다. 어느 세월에 480미터를 보낼지 걱정부터 된다. 드라이버 샷은 어김없이 슬라이스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어떻게 쳤는지 공이 아주 높이 뜨면서 슬라이스가 나서 야간 경기를 위해 설치한 라이트의 전구를 정통으로 맞춰버린다. 그것도 옆 홀에 있는 것을. 물어내라고 할까 봐 눈썹이 휘날리도록 숨을 헐떡거리며 오비티로 뛰어간다. 다행히 물어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5홀은 오히려 오비티가 편하다. 오비티에서 세컨 샷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빈스윙은 아직까지 오비티에서 하는 네 번째 샷을 세컨 샷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나중에 스코어 카드에 4라는 숫자를 보고도 그게 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다.

 

빈스윙이 머리 올리던 날의 스코어를 발표하겠다. 헤저드에 잠시 보관 중인 공이 5, 산 속으로 도 닦으러 간 공이 10, 그 중에 포기하고 하산한 공이 3, 정신줄을 놓으면서 정신줄과 함께 사라진 티가 6, 총 이동거리는 동반자의 2. 이 정도면 대강의 스코어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기진맥진하여 가까스로 18홀을 마치고 스코어 카드를 본 빈스윙이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가 본 숫자는 108. 빈스윙은 한 동안, 머리 올리러 가서 108개 쳤다고 떠버리고 다녔다.

 

어쩌면 스코어 카드에 적힌 숫자로 인해 초보골퍼들이 착각을 하면서 골프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스코어 카드에 140이나 15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면 포기하는 골퍼들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 어쩌면 초보골퍼들에게는 더 좋은 일이리라.

 

이 글은 빈스윙의 실제상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