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그립 때문에 이렇게 고생할 줄 몰랐다

빈스 윙 2011. 6. 17. 08:00

손도 작고, 악력도 약하고, 힘도 없고, 근력도 약한 골퍼가 있다. 나의 손가락(중지) 길이는 6cm가 조금 넘고, 손목부분의 주름에서부터 중지손가락 끝까지는 17cm가 조금 안 된다. 골프장갑 메이커의 스펙대로라면 나는 사이즈20 정도를 사용해야 하지만, 남성용은 제일 작은 것이 22라서 할 수 없이 여성용 장갑(사이즈 21)을 사용하거나, 남성용 22사이즈를 사용하는데 손가락이 짧다 보니 사실 여성용 21도 손가락부분이 크다.

 

악력은 체크해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요즘에 악력기를 하루에 500번 이상 하면서 조금은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근력 역시 신체적인 조건이 뒷받침되지 않는 편이다. 특별히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163cm의 신장에 57kg의 체중에서 알 수 있듯이 힘이라고는 나올 곳이 없는 그런 가냘픈 체격이다.

 

손이 워낙 작다 보니 항상 그립이 너무 굵다고 느껴지곤 했는데, 보름 전에 드라이버 그립이 많이 닳아서 교체를 했다. 기존의 그립 중량은 47g짜리인데 같은 무게의 그립이 없어서 48g으로 교체를 했다. 그리고 그립 잡는 법에 문제가 있는지, (가락)이 작아서 그랬는지 가끔씩 그립을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기존 그립보다 가는 그립으로 교체를 요구했다. 그런데 교체하고 나서 보니 기존 그립보다 더 굵은 그립으로 교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보름 정도 사용했는데, 연습하면서 거의 매일 그립을 놓쳤고, 라운드에서도 그립을 자주 놓치는 현상이 발생했다. 예전에는 아주 가끔씩 그립을 놓쳤는데 그 정도가 아주 심해진 것이었다. 그립을 놓치면서 어떻게 마찰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는데 왼손 엄지손톱 위쪽에 피부가 벗겨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오른손으로 왼손 엄지를 감싸야 하는 그립조차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반창고를 붙여도 따가워서 스윙은 물론 그립을 잡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골프샵에 가서 적당한 굵기의 그립을 찾으려고 시타채로 스윙을 했는데, 왼쪽 엄지 손가락 피부가 벗겨져 정상적인 그립을 잡을 수가 없어서 베이스볼 그립으로 잡고 스윙을 했다. 그런데 임팩트감이나 스윙감이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힘있는 스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립이 너무 굵거나 무거우면 헤드의 무게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여 45g짜리 가는 그립(여성용)으로 교체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베이스볼 그립에 대해 찾아보았다. 1900년 대에 영국의 해리 바든(Harry Vardon)이 고안한 오버래핑 그립을 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베이스볼 그립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토미 게이니 선수가 프로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베이스볼 그립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베이스볼 그립은 다른 그립에 비해 정확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파워 면에서는 다른 그립보다 월등히 우수하다는 내용의 글이 내 눈에 띄었다. 실제로 내가 잠깐 경험한 바와 같은 내용이었다. 손이 작거나 악력이 부족한 골퍼, 여성이나 시니어 골퍼들에게는 효과적이라는데, 왜 골프를 처음 배울 때는 천편일률적으로 남자는 오버래핑 그립, 여자는 인터로킹 그립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인터로킹 그립이나 베이스볼 그립으로 클럽을 잡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토미 게이니가 베이스볼 그립을 잡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야구를 하면서부터이고, 타이거 우즈가 인터로킹 그립을 잡는 것 역시 어려서부터 잡아온 그립이 습관화되면서 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 골프를 배울 때도 베이스볼 그립, 인터로킹 그립, 오버래핑 그립을 모두 잡아보게 하고 그 중에서 제일 편한 그립으로 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남성 골퍼의 경우에는 오버래핑 그립으로 골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인터로킹 그립은 여성골퍼 또는 힘이 약한 골퍼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남성골퍼들이 인터로킹 그립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시가와 료, 로리 매킨로이, 대니리, 타이거 우즈, 부바왓슨, 콜린 몽고메리, 잭 니클라우스 등의 선수가 힘이 약해서 인터로킹 그립을 잡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시가와 료의 경우에는 손바닥은 크지만 손가락이 짧아서 오버래핑 그립으로는 클럽과의 일체감을 느끼기 어려워 인터로킹 그립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 역시 손바닥은 큰지 작은지 모르겠지만, 손가락이 짧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동안 오버래킹 그립으로 클럽과의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클럽이 손에서 노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 아마도 왼쪽 엄지의 피부가 벗겨진 것도 그립이 너무 굵어서 두 손의 일체감이 떨어지면서 클럽이 손에서 놀았기 때문에 벗겨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 가지 그립의 장단점을 모두 배운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립을 바꿔서 슬럼프를 탈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째든 나는 오늘부터 그 동안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인터로킹 그립과 베이스볼 그립으로 연습을 해 보았는데, 베이스볼 그립은 오버래핑 그립을 약간 변형시켜서 오른쪽 새끼 손가락을 왼쪽 검지 손가락에 올려놓지 않고, 바로 그립을 잡는 식으로 하고 왼손 엄지는 오버래핑 그립과 같은 방법으로 그립을 잡았는데 역시 스윙을 강하게 할 수 있음을 느꼈다.

 

인터로킹 그립은 두 손과 그립의 일체감이 아주 좋았으나,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매우 불편했다. 앞으로는 당분간 인터로킹 그립과 베이스볼 그립을 테스트 해 볼 생각이다.

 

골프그립은 골프스윙과 마찬가지로 기본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어느 것이 정석이라고 단정짓기보다는 내게 맞으면 그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내게 맞는 그립을 찾아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