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 라운드에서 도전정신이 필요할까?

빈스 윙 2012. 3. 22. 07:30

도전정신

참 좋은 말이다. 스포츠에서의 도전정신이나 비즈니스에서의 도전정신,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아름다운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골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신이 목표한 바대로 꾸준히 노력하는 골퍼들은 실력은 일천하더라도 그 노력하는 과정이 아름답다.

 

얼마 전에 4 5기의 신화를 만들어낸 홍수환씨가 도전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고 한다. 1974 7 WBA 팬텀급 타이틀전에서 판정승으로 챔피언에 오르면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그 후, 1977 11 WBA 슈퍼팬텀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2회에 4번이나 다운을 당하고도 3회에 KO승으로 ‘45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2회에 4번이나 다운을 당했다면 그 경기를 포기할 만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혼을 발휘하면서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서 결국은 3회에 KO승을 거둔 홍수환 선수에게 그 당시 온 국민이 열광했었던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골프도 18번 홀에서 장갑을 벗을 때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샷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끝까지 게임에 집중하여 라운드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골퍼 자신이 목표한 스코어나 특정 스윙기술을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해야 작은 성공을 이룰 수 있으니 골프도 도전정신이 필요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골프의 모든 부분에서 도전정신으로 무장해서는 곤란하다. ‘도전정신이라는 것을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골프 라운드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도전정신에 입각한 샷이기도 하다.

 

목표한 스코어에 도전하는 것이나 특정한 스윙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도전하는 것은 한 번 실패를 하더라도 그 다음 도전기회가 주어진다. 만약에 한 번의 실패로 끝나버리는 상황이라면 도전정신이 자칫 무모한 도전이나 무모한 욕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바로 골프 라운드에서의 샷이 그런 경우다.

 

 

라운드 중에 150~160미터를 넘겨야 하는 헤저드 앞에서 잘 맞아야 170미터를 보낼 수 있는 클럽으로 샷을 한다면 그것을 과연 도전정신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무모한 욕심으로 봐야 할까? 나는 무모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만약에 연습이라면 150~160미터를 넘길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할 수 있겠지만, 골프 라운드에서는 오직 한 번의 기회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한 번의 기회에서 실패한다면 남는 것은 벌타로 인한 타수의 증가 내지는 미스샷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정도 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초보골퍼들은 이처럼 라운드 중에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친 샷이 자칫 무모한 욕심에 기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골퍼 스스로는 도전정신이라고 믿고 샷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무모한 샷을 도전정신으로 미화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만약에 도전정신에 입각한 샷이라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2~30% 정도 밖에 안 된다면 아니 50%를 밑돈다면 그것은 골프의 본질에 어긋나는 샷이 되는 셈이다. 내 생각에는 최소한 70% 정도의 성공확률은 가지고 있어야 도전정신에 입각한 샷이 되지 않을까 한다.

 

혹자는 그렇게 성공확률이 높은 샷이 무슨 도전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의 기회 밖에 없는 골프 라운드에서의 샷에서는 도전정신을 조금은 소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스코어를 지키는 방법이고, 골프라는 게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기적인 골프여정에서의 도전과 골프 라운드에서의 도전은 확실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골프 라운드에서도 도전이냐 무모한 욕심이냐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스코어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스코어에 관계없이 무조건 도전정신만을 외치는 것이 자신의 골프 스타일이라면 굳이 도전의 종류를 구별하거나 냉철한 판단을 할 필요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은 골퍼라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하려고 하는 샷이 진정한 도전인지 아니면 무모한 욕심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골프 라운드에서의 골프는 도전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겸손을 요구하는 운동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