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와의 결혼 그리고 남녀 간의 결혼

빈스 윙 2012. 5. 17. 07:30

골프에서 첫 번째 라운드 하는 것을 흔히들 머리 올린다고 말한다. 머리를 올린다는 말은 기생이 처음으로 손님을 맞거나 처녀가 시집갈 때 쪽진 머리로 만드는 것을 일컫는 말로 알고 있는데, 왜 골프에서 첫 라운드를 머리 올린다고 표현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처음이라는 의미가 강한 것 같다.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설레임이 있다. 남녀간의 만남도 그렇고, 골퍼와 골프와의 만남도 그렇다. 그리고 처음이라는 단어는 약간(?)의 용기도 필요로 한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능숙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능숙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여 시작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남녀 간에는 프로포즈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골프는 가능하면 빨리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골퍼와 골프의 만남이 시작되면, 골퍼는 클럽과 만나고 골프공과 대면한다. 그러한 만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골프와 가까워지는 골퍼가 있는가 하면, 온몸이 몸살을 앓거나 크고 작은 아픔을 경험하는 골퍼들도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크고 작은 가슴앓이를 하듯이 말이다.

 

그래도 남녀간의 연애시절이 가장 재미있듯이 골퍼들도 연습을 하면서 골프의 재미를 느끼면서 누구나 첫 라운드에서의 멋진 샷을 기대하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착각 속에 있을 때가 골프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연애시절을 보내고 평생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는 남녀들과 골퍼들은 공통점이 있다. 연애시절에는 몰랐던 성격이나 버릇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서로 속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이혼을 하기도 한다.

 

2~30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남녀가 너무 죽이 잘 맞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만일 죽이 잘 맞는다면 그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기 때문은 아닐까?

 

 

골프에 재미가 들려서 호기롭게 첫 라운드를 나갈 때면, 이 정도 실력이면 첫 라운드에서 망신을 당할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골퍼 스스로의 생각일 뿐, 성격 차이로 싸우는 신혼부부들이 서로 속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골프에게 배신당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초보골퍼의 마음이다.

 

골프에서 머리를 올리는 과정도 다양하다. 스윙이 안정될 때까지 첫 라운드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 골퍼도 있고, 골프클럽을 잡자마자 머리를 올리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윙이 안정될 때까지 머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내 될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서 결혼하겠다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어른들은 흔히 결혼을 해야 돈이 모인다는 아이러니한 말씀을 하신다. 이는 곧 라운드를 해야 실력이 향상된다는 말로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혼 초에 그렇게 싸우다가도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서 살다 보면 어느덧 신혼 초의 불협화음은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 골프도 몇 년만 하면 싱글골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 처음의 열정은 온데 간데 없고 그냥 그저 그런 백돌이 골퍼 혹은 간신히 보기플레이를 하는 골퍼로 남은 자신을 발견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기도 한다.

 

골프와 그리고 아내와 아웅다웅 다투기도 했고, 아내가 나를 미워하지도 골프가 나를 배신하지도 않았건만, 미움 덩어리, 배신 덩어리를 가슴 속 한 가득 품고 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모두 부질 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왜 골프를 시작했고, 왜 결혼을 했을까? 골프와 싸우려고? 아내와 싸우려고? 아마도 그런 골퍼와 남편은 없을 것이다. 골프나 결혼이나 재미있게 살려고 했던 것 아닌가?

 

세상살이가 나의 이기적인 뜻대로 된다면, 그 세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골프나 결혼이나 자녀문제가 나의 이기적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그만이다.

 

골프나 인생이나 영원하지 않은 것.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장땡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늘 아침 불현듯 나의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