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골프에서 배운 겸손

빈스 윙 2012. 6. 4. 07:30

골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클럽을 장만했던 날이 기억납니다. 골프를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주머니 사정상 7번 아이언만 하나 구입하려고 찾은 중고용품 매장에서 골프장비에 대한 아무런 지식 없이 그냥 풀세트를 덜렁 사버렸습니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골프가방과 우드 정도의 헤드크기를 가진 드라이버였지만 그래도 골프가방을 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세상의 전부를 얻은 듯 가벼웠습니다. 그렇게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장만한 골프클럽을 메고 연습장을 오고 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IMF로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한 달여의 우쭐거렸던 발걸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사진 위 : 10여 년 전에 구입한 드라이버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드라이버의 헤드 비교]

[사진 아래 : 10여 년 전에 구입한 드라이버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드라이버의 길이 비교]

 

 

 

그리고 10년이 지난 3년 전에 본격적으로 다시 골프를 시작하면서 연습장 레슨프로의 소개로 찾아간 매장에서 담당자가 추천해주는 몇 개의 클럽을 쳐보고 아내의 클럽과 제 클럽을 같이 구입했습니다. 클럽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비록 지갑은 홀쭉해졌지만 골프가방을 둘러멘 어깨는 당당했고, 마음은 뭔가 우쭐해졌던 그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으로 골프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나를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갓 결혼한 주부가 살림을 하나씩 장만해 나갈 때 그런 기분일까요? 아니면 처음으로 에쿠스 같은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고 운전석에 앉아서 주행할 때의 마음이 그럴까요?

 

어째든 저는 그렇게 약간은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골프에서 겸손을 배워나갑니다. 라운드를 하면서 전반에 게임이 잘 풀려서 조금만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방심을 하게 되면 후반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라운드에서뿐만 아니라 골프라는 운동을 하면서 골프에 거만한 마음을 가지면 샷이 망가지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골프를 2년 정도하고 100타도 깨고 연이어 90타도 깨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고 느끼면서 연습을 등한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날 첫 라운드에서 다시 월백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90타를 깼으니 최소한 90대 타수는 유지할 줄 알았는데 제가 골프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골프는 교만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정신차리라고 월백을 하게 한 것은 아닐까요?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산이 정상을 허락하지 않으면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산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산악인에게 정상을 허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골프는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골퍼에게 좋은 결과를 허락하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것은 골프가 가진 게임의 난이도 자체 때문이 아니라 골프가 자연을 등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힘을 거슬릴 수 없듯이 자연을 등지고 있는 골프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긴다면 여지없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제가 초보골퍼이기 때문일까요?

 

제가 초보골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저는 계속 골프 앞에서 자만하지 않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 골프를 통해서 겸손을 배울 수 있게 하니까요. 어떤 넘을 수 없는 존재 앞에서만의 겸손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겸손할 수 있는 미덕을 골프를 통해서 배운다면 이 또한 골프를 즐기는 재미가 아닐까요?

 

골프는 그렇게 저에게 인생을 알려주는 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