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골프에 미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유형

빈스 윙 2011. 2. 22. 08:40

당구를 치면 천장이 당구대로 보이고, 바둑을 두면 인도(人道)의 보도블록이 바둑판으로 보인다더니, 당구를 배울 때나, 바둑을 배울 때는 안 그랬는데 그리고 골프를 배울 때도 그저 시큰둥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길다란 막대기만 보면 휘둘러보고 싶고, 공원의 푸른 잔디를 보면 공 한 번 쳐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인터넷에 떠도는 골프유머 중에도 나처럼 골프에 중독된 사람을 빗대어 만들어낸 유머들이 많이 있다. 가족들 생일이나 조상 제삿날은 기억 못해도 어느 골프장 몇 번 홀이 몇 미터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골퍼, 자식에게 주는 용돈은 아까우면서 신형 드라이버 구입비용은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 골퍼, 태풍이 불어 수재민 돕기에 온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마당에 그린에 물이 고여 공이 구르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골퍼, 아들의 100점 맞은 성적표를 보고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100파는 하겠다고 말하는 아빠골퍼,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거울이나 쇼윈도우를 보면, 스윙을 하면서 자신의 스윙 폼을 점검하는 골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재미 있으라고 지어낸 말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골프에 미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선 나의 경우를 살펴보면, 연습은 등한시 하고 골프연구에만 매달려 있는 경우다. 골프의 학문적 체계라도 정립하려는 듯이 골프를 모든 학문적 기반에서 연구하는데 미쳐있다. 연습은 등한시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이미지 라운드를 자주 한다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뇌 의학적인 차원에서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로 미친 것이 틀림없다.

 

골프장비에 미쳐 있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직원이나 친구 이름은 가끔 까먹기도 하지만, 새로 나온 드라이버 이름은 한 번 보면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이름뿐만 아니라 메이커에서 홍보하는 장비의 특성을 줄줄이 꿰고 있다. 이런 골퍼들은 관심의 정도가 기억력을 초인간적인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골퍼들이다.

 

골프장비에 미쳐 있는 골퍼 중에는 수집광도 있다. 주로 퍼터 수집광들이 많은데 100여 개의 퍼터를 소장한 적이 있다는 골퍼도 있다. 100여 개의 퍼터를 모두 구입했다면, 퍼터의 가격을 아무리 싸게 계산해도 몇 천 만원 정도는 들지 않았을까? 특히 스카티 카메론의 서클T 투어 퍼터의 일부 모델은 희소성까지 있어 소비자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체리 봄 닷(Cherry Bomb Dot) 시리즈의 경우 5~60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한다.

 

골프대회에 미쳐서 모든 골프대회를 줄줄이 꿰고 있는 골퍼도 있다. 골프대회는 축구나 야구대회와는 달리 골프대회는 후원사의 이름이 앞에 붙어서 같은 대회라도 이름이 조금씩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은 어지간히 미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4대 메이저 대회가 뭔지도 모르는 골퍼들이 있는 반면, 이들은 메이저 대회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아시아 투어를 망라하여 우승자와 대회이름과 장소 등을 꿰뚫고 있다.

 

골프선수에 미쳐있는 골퍼들도 꽤 있다. 투어프로들이 우승한 메이저 대회는 물론 그들의 스윙특징까지 파악하고 있는 골퍼들이다. 뿐만 아니라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골퍼들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투어프로들의 사생활에까지 관심이 많은 골퍼들도 있다.

 

실제 라운드에 미친 골퍼도 있다. 작년 12월에 읽은 골프관련 기사에 의하면 64세의 리차드 루이스라는 미국 골퍼는 12 19일 현재 2010년 한 해 동안 587 라운드를 돌아, 기존의 기네스북 기록인 586 라운드를 갱신했다고 한다. PGA 투어 프로골퍼를 꿈꾸던 그의 계획대로라면 2010년 한 해 동안 611 라운드를 돌 수 있다고 하는데, 하루에 3라운드를 돈 적도 있고, 1년 동안 그가 라운드를 하지 않은 날은 오직 19일이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 라운드를 하려면 보통의 열정을 가지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연습에 미친 골퍼들도 있다. 프로지망생이 아닌 일반 아마추어 골퍼가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수천 번의 스윙을 하는 것은 미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아마 고수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나도 한 때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연습의 효율 면에서는 빵점 짜리 연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아무리 골프에 미쳤다고 하더라도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미친 짓이다.

 

미국에는 골프광협회라는 단체도 있어서 매년 연말에 가장 골프에 미쳐서 산 사람들에게 시상을 한다고 한다. 사실 골프라는 운동이 어느 정도 미치지 않으면 일정 수준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미쳐도 곱게 미치라는 얘기가 있듯이 건설적이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곱게 미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