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빈스윙 칼럼

웃기는 고무줄 스코어 어디까지 인정할까?

빈스 윙 2011. 10. 5. 08:00

업무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즘에는 골프를 안 하는 친구들이 없을 정도로 내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골프를 즐긴다. 그래서 예전에는 저녁 먹고 맥주 한 잔 하던 일정이 요즘에는 저녁 먹고 스크린 골프를 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친구들 중에는 최근에 골프를 시작한 친구도 있고 10년이 넘는 구력을 자랑하는 친구들도 있다. 구력이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이야 스코어가 들쑥날쑥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10년 이상 골프를 해 온 친구들의 스코어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80대 중반 정도는 치는 실력인데 수시로 100타를 넘겨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자카르타 골프장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핸디에서 1~2타 정도의 차이를 보일 정도로 꾸준한 타수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무줄 스코어를 기록하는 친구들을 보면 어느 것이 진짜 실력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과는 내기를 하기가 부담스럽다. 어떨 때는 80대 초반의 타수를 기록하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100타를 훌쩍 넘기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110타를 깨는 것이 목표였던 시절, 내 눈에는 80대 타수를 기록하는 친구들을 보면 프로선수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우러러 보였던 친구가 100타를 넘기는 것을 보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잘 친다.)

 

그런 고무줄 스코어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어느 것이 그 친구의 실력인지 물어보았는데 너무나 솔직한 친구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80대 타수를 기록한 것도 자기 실력이고, 100타를 넘긴 것도 자기 실력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고무줄 같은 스코어를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고무줄처럼 늘어난 스코어도 그리고 다시 줄어든 스코어도 모두 자기 실력이라는 것이다. 

 

100타를 넘긴 것은 전날 술을 많이 마셨다든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랬다는 핑계를 댈 만도 하건만, 솔직하게 자신의 실력이라고 인정하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묘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스코어에 상당히 연연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프로시험을 보고 싶은 마음에 스코어를 끌어내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면서 즐기는 골프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운드를 하면서도 전반에 50타 가깝게 치면 후반에는 스코어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 라운드를 하는 것이 나의 골프라면 그 친구는 80대 타수가 나와도 즐겁고, 100타를 넘겨도 즐거운 그런 골프를 하고 있었다.

 

아마추어가 해야 할 골프의 표본이 바로 그런 골프가 아닐까 한다. 스스로 스코어와 골프의 노예가 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무엇 때문에 골프를 하겠는가? 하지만 많은 골퍼들이 스스로 골프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하면서 골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는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연습을 하거나 레슨을 받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골프를 지금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편안하게 스윙을 하다 보니 스윙에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고 아주 자연스럽다. 오랫동안 골프를 하다 보니 습관으로 굳어진 부분도 있지만 스윙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뛰어나다.

 

잘 친 라운드나 엉망으로 친 라운드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그 친구의 마음에서 골프에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도인의 냄새가 풍겨나는 것은 내가 아직 골프의 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무줄 스코어를 모두 자신의 스코어로 인정하는 그 친구의 여유로운 마음을 닮아가고 싶다.